With Birds

[새와 사람 사이] #9_With Birds: 돈 내는 탐조대회

지난 12월31일, 강화탐조클럽이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해 온 ‘With Birds: 100일 탐조대회’가 막을 내렸다. 말 그대로 100일간의 긴 여정을 마친 것이다.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 탐조대회로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대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이 탐조대회는 기간보다 더 특별한 점이 있다. 대회 우승자들에게 특별한 상품이 없고, 대신 새를 본 만큼 돈을 내야 한다. 1종 당 1,000원씩, 많이 보면 볼수록 많은 돈을 내야 하는 탐조대회다. 조금 길지만 이 대회의 설명글을 인용해 보자.

“1분에 15마리, 1시간에 913마리, 하루에 22,000마리의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혀 죽습니다.

국내에서 1년에 800만 마리 이상의 새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만 연간 3억5천에서 9억9천 마리가 같은 이유로 죽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펼쳐진 멋진 풍광을 감상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바닷가 카페,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예쁜 숲속 펜션, 고속도로의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높게 세워놓은 방음벽 등은 사람에게 편리함과 쉼을 주지만, 새들에게는 죽음의 벽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이 새도, 이미 죽음의 벽을 경험했거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운이 좋은 극소수가 이 벽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그 벽 아래에서 사체로 발견될 것입니다. 이번 탐조대회는 내 눈앞에 보이는 바로 이 새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록한 새가 무사할 수 있도록, 더 이상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부하신 기부금으로 새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10종을 기록하신다면, 가로 1미터, 세로 1미터의 버드세이버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돈 내는 탐조대회

돈 내는 탐조대회는 과연 성공했을까? 글쎄…, 보기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성공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0일 동안 모두 14명이 참여해 188종, 1140개의 기록을 남겼다. 물론 100일이라는 기간을 감안한다면 아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모두 96만 원이 모였다. 어떤 이는 자기 기록에 ‘나누기 0.1’을 해서 얹어 냈고, 어떤 이는 (비록 목표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애초 목표했던 종수만큼 계산해서 냈고, 또 어떤 이는 대회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작년 한 해 동안 관찰한 종수만큼 계산해서 내기도 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5×10 버드세이버’를 구입하여 버드세이버 부착활동을 하고 있는 환경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많은 이들이 관심과 성원을 보여주었고, 역시 새를 보는 사람들이 새를 아끼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계기였다.

올해에는 세부적인 규정을 조금 다듬어 더 넓게 진행해 볼 수 있겠다. 예컨대, 탐조대회 참가자와 후원자를 함께 모집해서 진행하는 것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대회 참가자 A를 후원하는 B를 함께 모집하여 종당 각 1,000원씩 2,000원을 모금할 수 있다. 기부금을 두 배로 모을 수 있다는 점 외에도 평소에 새를 보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어도 새를 위한 마음을 낼 수 있다.

방식이 조금 달랐지만, 생태지평에서 주관한 ‘2020 갯벌키퍼스 빅이어: 새를 구하는 탐조’도 비슷한 취지의 전국 규모 행사였다. 이 행사에는 69명이 참여하여 8,880개의 기록을 남겼고, 최고 기록자는 무려 199종을 관찰했다. 올해는 이런 행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과 규모로, 마구 열렸으면 좋겠다. 강화탐조클럽은 올해 전시회의 주제를 ‘죽음: 가장 혐오스런 전시회(가)’로 잡았다. 유리창 충돌, 로드 킬, 중독, 사냥 등 인간 때문에 죽어간 다양한 생명들의 참혹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로드-킬로 죽은 까투리


건축물의 획기적 전환점 VS 죽음의 덫

유리는 언제 발명되었을까? 그 시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로 유리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본격적인 생산과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기원전 5세기경 이집트 시기라는 데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묘지에서 발굴된 유물 외에 유리를 만드는 과정이 그려진 벽화도 발견됐다. 초기의 조잡했던 기술은 ‘입으로 불어서 모양을 만드는 방법(glass blowing)’을 개발한 로마를 거치며 발전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과 함께 판유리가 대량 생산되면서 건축 기법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제1회 만국박람회장은 유리가 건축물에 어떤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아낌없이 보여준 건축물이다. 개최년도와 같은 1851피트 길이의, 수정궁(The Crystal Palace)이라 불린 이 건물은 대영제국의 위세를 만방에 과시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이후 유리는 건축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가 되었다. 건물 내부에서의 조망을 보장하면서도 외부와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 건축물의 외관은 거의 유리로 덮여 있다고 해도 될 만큼 많은 유리가 사용된다. 건축물 외에도 우리 생활 구석구석 유리가 사용되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다. 눈이 나쁜 내가 쓰는 안경도 그렇고, 버드워처들의 필수품인 쌍안경도 유리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유리지만, 새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덫이 된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국립생태원에서 발행한 ‘야생조류와 유리창 충돌’이라는 보고서를 볼 것을 권한다. 유리창 외에도 새들에게 치명적인 인공구조물은 많다. 전깃줄이나 철책, 조명, 그리고 그물 등이 그렇다. 철원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들의 폐사 원인 중 전선이나 철책에 충돌해서 일어난 사고가 4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만약 사람과 새들이 한자리에 모여 유리의 문제점에 대해 ‘끝장토론’을 가진다면, 그 토론은 어떻게 끝날까? 토론의 주체들이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면, 쉽게 끝날지도 모른다. ‘편리’와 ‘생존’의 대립점 앞에서 ‘편리’를 옹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두 주체가 동등한 발언권과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힘 센 지배자인 인간은 새들의 죽음과 자신의 편리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필요한 것은 대안이 아니라 관심

그런데 인공구조물 때문에 죽어가는 새를 구하기 위해서 정작 인간이 포기해야 할 것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약간의 노력과 비용만 들인다면 인공구조물 충돌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도는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5×10 규칙’에 따라 도트 스티커를 붙여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크릴 물감으로 점을 찍어도 된다. 필름이나 테이프를 10cm 미만 간격으로 붙이거나 그냥 줄만 늘어뜨리는 것도 커다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궁금하다면 https://www.birdsavers.com/를 참고하시라). 투명 유리를 불투명 유리로 교체하거나, 아니면 유리창을 멋진 이미지로 꽉 채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때 유행했던 맹금류 스티커는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새들이 맹금류로 인식하지 않고, 그저 장애물 정도로 인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넒은 유리창에 딸랑 한 두 장 붙여놓는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새들이 빠져나갈 틈이 없다고 느낄 수 있게 촘촘하게 붙인다면 효과가 있다).

최근에는 사람은 볼 수 없는 자외선 영역을 새들은 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자외선반사코팅유리도 개발됐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투명한 유리창이지만 새들의 눈에는 복잡한 그물망이 촘촘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여 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새들의 유리창 충돌과 죽음에 대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유리창 충돌방지 스티커를 구입할 수 없다면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서 ‘5×10’ 규격에 맞게 점을 찍어줘도 된다.

유리창에 테이핑을 하지 않고, 줄을 늘어뜨리기만 해도 유리창 충돌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Ornilux라는 이름의 자외선 반사 코팅 유리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무늬가 새들에게 보이도록 하여 유리창 충돌을 방지한다. 

편리함을 버린 사람들

미국 포틀랜드의 집주인들은 새를 비롯해 수많은 야생생물을 자신의 뒤뜰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풀을 싹 치고 정원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 멋진 정원등을 설치하는 대신, 부러져 넘어진 나무는 나무대로, 오래되어 썩은 통나무는 통나무대로 그대로 남겨둔다. 낙엽도 굳이 쓸어 모아 태워버리지 않고, 다양한 덤불과 관목, 교목이 어우러져 정원이라기보다는 작은 숲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 부러지거나 썩은 통나무는 다양한 새들과 곤충들의 서식지로 남겨두고, 박쥐를 위한 둥지상자를 달아주거나, 나그네새들의 이동 시기에는 조명을 줄이거나 없애준다. 당연히 유리창 충돌을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노력을 돕기 위해 오듀본 협회와 지역 환경단체들이 함께 ‘뒤뜰서식지인증프로그램(Backyard Habitat Certification Program)’을 운영하고 있는데, 6,000명이 넘는 집주인들이 이 인증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들의 경험과 노력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뒤뜰을 ‘아주 자연적인 준 야생상태’로 유지하고 싶어 한다. 올봄에 잠시 들은 올빼미 소리나 근처에 살고 있는 다람쥐를 발견하곤 크게 기뻐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종류의 새나 곤충을 관찰하고, 전에 보지 못했던 거미를 발견하면 즐거움을 느낀다. 더운 여름밤에 크게 노래하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그들이 안정된 서식지를 찾았음에 안도하고, 죽은 호두나무를 딱따구리들이 둥지로 이용하는 것을 보면서 뿌듯해 한다. 벌새가 새로운 둥지를 짓는 것을 보면 곧 만나게 될 새끼들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잊고 있었던 토종식물과 곤충, 그리고 조류 사이의 연관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준 이 프로그램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생물의 본능적 요구가 아닐까. 유리창은 우리에게 안락함과 안전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동물원에서 무서운 맹수나 파충류를 ‘소심하게’ 그러나 꽤 자세하게 관찰할 수도 있는 것은 그들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튼튼한 유리벽 때문이다. 결국 유리가 가로막아 준 동물원은 사람의 요구에 맞게 연출되고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 유리로 대표되는 편리한 도구들은 사람과 자연 사이를 가로막은, 쉽게 넘기 힘든 장벽이다. 그런 점에서, 유리창을 깨버릴 수 있는 용기야말로 자연을 온전하게 조우할 수 있는 출발점일지 모른다.

‘뒤뜰서식지인증프로그램(Backyard Habitat Certification Program)’은 야생동물의 서식지 조성, 조명이나 유리창 충돌, 고양이 같은 야생동물에 대한 위협요소 제거 등 자연스런 생태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몇 가지 요소를 단순하게 제시한다. 이중 1~3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그에 맞는 인증서를 준다.

박쥐들을 위한 인공둥지를 설치해 주고 있다.

부러지거나 넘어져 푸석푸석해진 통나무는 양치식물이나 곤충들의 훌륭한 서식공간이 되고, 자연스레 새와 같은 상위포식자들에게 제공되는 훌륭한 먹이창고가 된다.

홈통에 흘러내린 빗물도 오랜 시간 고여 있다가 조금씩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면 새들에게 훌륭한 급수대나 둥지터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애완동물의 대명사인 고양이는 최고의 야생조류 사냥꾼이다. 특히 번식기가 되면 어린 새끼들이 많이 희생되는데, BHCP는 고양이를 실내에서 살도록 권장하고 있다.


<생태지평 웹진 2020. 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