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할 권리를 보장하라!

[새와 사람 사이] #1_ 번식할 권리를 보장하라!

얼마 전, 수하암에 다녀왔다. 영종대교 중간쯤에 위치한 작은 바위섬인 수하암은 매년 수십 쌍의 저어새가 번식하는 곳이다. 저어새는 전 세계 생존 개체 수가 4,800마리 안팎인 국제적인 보호조로, 매년 3월 경 우리나라에 와서 번식을 하고 11월 경 월동지인 대만, 홍콩 등지로 돌아가는 여름철새이다. 우리는 매년 저어새들이 도착하기 직전에 번식지에 들어가 둥지자리를 정비하고, 둥지재료를 넣어주는 일을 해 오고 있다.

저어새들이 새끼를 기르는 기간인 5~6월 사이에는 논에 들어가 먹이활동을 많이 한다. 아직 염분조절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어린 새끼에게 담수성 생물 먹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저어새는 갯벌이나 얕은 습지에서 부리를 휘휘~ 저어서 먹이를 잡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먹이 습성 탓에 갯벌과 습지가 발달한 지역을 선호한다. 또한 저어새는 바위틈이나 땅바닥에 나뭇가지를 엮어 둥지를 만들기 때문에, 육지를 통해 천적이 들어올 수 없는 고립된 섬을 번식지로 이용한다. 저어새가 주로 서해안, 그것도 갯벌이 많고 육지에서 떨어진 작은 바위섬에 둥지를 트는 이유이다. 문제는 이런 장소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갯벌 지역은 인간에게 점령당했다. 엄청난 규모의 갯벌이 개발을 위해 매립되거나 훼손되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갯벌지역은 사람들의 간섭이 심각하다. 목이 좋은 갯벌에는 어김없이 그물이 쳐졌고, 저어새가 둥지를 틀 만한 바위섬들은 낚시꾼들이 선점했다. 볼음도 앞 수리봉처럼 저어새가 번식 중인 시기에 낚시꾼들이 함부로 들어가는 바람에 번식을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군대가 사격장으로 사용하면서 새들의 번식이 위협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매향리 농섬이나 군산 앞바다 피음도, 강화군 서도면 비도 등이 그렇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10,000마리 정도가 생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어새는 이후 급격하게 감소해 1990년대 초에는 300마리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국 저어새는 한국에서 제일 살벌한 지역을 선택했다. 남과 북의 가장 첨예한 무력이 밀집되어 있는 DMZ1) 일원, 그래서 민간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 저어새의 주된 번식지가 되었다. 전남 영광 앞바다 칠산도를 제외한 나머지 번식지는 모두 인천만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그중 남동유수지 인공섬 등 몇 군데를 제외하면 모두 민간인 출입이 쉽지 않은 곳이다.

대부분의 멸종위기종들이 그런 것처럼 저어새가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것 역시 사람 탓이 제일 크다. 한국전쟁을 비롯해 20세기의 수많은 전쟁은 저어새의 서식지를 파괴했으며, 농약 사용량이 급증하고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생존의 토대도 피폐해졌다. 물고기를 통째로 잡아먹는 저어새에게 DDT, 수은, 납과 같은 중금속 농축은 심각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지금은 함부로 버린 낚싯줄과 바늘이 가장 큰 위협요인 중 하나다. 저어새는 눈으로 먹이를 포착하고 사냥하는 새가 아니다. 부리를 갯벌에 넣고 휘휘 젓다가 부리 끝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물고기를 잡는데, 만약 갯벌에 낚싯바늘이 숨어 있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예민한 감각기인 저어새의 부리는 생각보다 약하기 때문에 날카로운 금속에 긁히고 찢기고 심지어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수하암에 인근 어민이 침입하여 알을 훔쳐가는 믿기지 않는 일도 있었다. 그 분에게는 불행한 일이겠지만, 모니터링을 위해 설치해 둔 카메라에 모든 ‘범행 현장’이 찍히고 말았다. 그깟 새알 몇 개 꺼내 먹었다고 뭐가 대수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 분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큰 벌금을 함께 드셔야 했다. 어린 시절 새 둥지 좀 털어봤던 철없는(?) 어르신들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 이해한다 치자. 국가기관이 이런 일에 한 몫 거드는 일도 있었다. 몇 년 전, 해경이 수하암 상공에 헬기를 띄워 로프를 타고 내려가는 강하훈련을 한 것이다. 세월호를 방관했던 해경이 이제 와서 웬 강하훈련인지 모르겠으나, 그 훈련의 목적이 생명 구조에 있었다면 번짓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셈이다. 그들이 로프를 타고 멋지게 내려갔던 그 수하암은 어린 저어새들이 힘겹게 알 껍질을 깨뜨리며 막 생명의 불꽃을 피워 올리는 현장이었다. 그들의 군홧발에 얼마나 많은 알과 새끼들이 짓밟혔는지는 알 수 없으나, 21세기 대한민국 국가기관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생태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먹이사슬의 운명이 저어새를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 육지에서 가까운 번식지는 수리부엉이 같은 맹금류의 습격에 새끼들이 당하기도 한다. 2018년의 매도, 2019년의 남동유수지는 너구리가 그랬다. 두 곳 모두 어미들이 번식을 포기하고 말았다. 2009년에 처음 번식을 시작한 남동유수지는 매년 번식쌍이 증가해 지금은 200쌍 이상이 번식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저어새 번식지이다. 그런데 작년에 너구리가 침입하여 새끼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15마리만이 살아남았다. 

뒤늦게나마 환경부에서 인공섬 주변에 전기 펜스를 설치했다. 엄청난 희생을 당한데다가, 주변에 낯선 구조물까지 생겼으니 저어새들이 그곳에 다시 자리를 잡을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번식지가 워낙 부족한 상황을 고려하면 다시 이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절박한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송도 인공섬의 전기 펜스

1916년 전남 직도에서 일본인 학자에 의한 번식 기록 이후 한국에서 사라진 종으로 여겨졌던 저어새는 1987년 북한 대동강 하구의 무인도 덕도에서 다시(?) 발견2) 되었다. 남한에서도 1991년 전남 칠산도에서 저어새 번식이 새롭게 확인되었고, 이후 저어새 번식지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뜻있는 학자들과 환경단체들의 지속적인 보호 노력 덕분에 개체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300마리 선까지 떨어졌던 생존 개체 수가 조금씩 늘어나더니 2020년 1월 17~19일 사이에 진행된 동아시아 동시센서스 결과 4,864개체3)가 확인되었다. 고무적인 결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7,000~10,000개체(최소존속개체군)는 되어야 다소나마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고려한다면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저어새의 보존과 증식을 위해 필요한 일이 무척 많지만, 무엇보다 둥지터를 확대하는 것이 제일 시급하다. 개체 수는 늘어나고 있는데, 안정적으로 번식할 장소는 제한되어 있거나 여러 가지 간섭요인 때문에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번식지 경쟁이 심해지고, 결국 이 경쟁에서 밀린 놈들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곳에 둥지를 틀게 된다. 강화도 남단의 각시암은 매년 30쌍 이상이 번식하는 곳인데, 둥지 경쟁에서 밀린 어린 새들이 각시암 바닥에 둥지를 튼다. 물높이가 9미터를 넘어가는 큰사리에는 여지없이 물에 잠기고 파도에 쓸려나가 이렇게 유실되는 알이 매년 10여개 이상이다. 멸종위기종 1급, 천연기념물 205호, 거기다 강화군을 상징하는 군조라면서 가장 기초적인 보호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

2018년 4월 12일 각시바위(688cm)

2009년 7월 24일 각시바위(972cm)

어떤 이들은 생태계의 변화에 사람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포식과 피식의 관계, 환경 변화에 따른 적응의 차이 등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생존경쟁에 따른 개체 수 조절기능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럴 듯한 주장이지만, 그 이야기가 맞으려면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모든 간섭을 먼저 중단해야 한다. 매립한 갯벌과 점거했던 바위섬을 다시 돌려주고,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약탈적 행위를 모두 중단한 상태라면 우리가 굳이 둥지터를 보수하러 번식지에 갈 필요도, 쓸려나갈 알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원죄가 없었다면 저어새에게 멸종위기종이라는 비극의 수식어를 붙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강화도 교동도와 북한 연백군 사이에 역섬(요도)이라는 무인도가 있다. 저어새 번식지이다. 그런데 이곳의 모니터링 기록은 항상  반쪽짜리다. 북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쪽에서 관찰한 개체와 북쪽에서 관찰한 개체 수를 합쳐야 비로소 온전한 개체수를 파악할 수 있다. 남과 북이 협력하지 않으면 영영 반쪽짜리 모니터링 기록만 남길 수밖에 없다.

2019년, 각시바위에서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한 어린 개체가 염하를 거슬러 건너편 북한 땅까지 가서 놀다 온 것이 확인됐다. 사실 이런 무단월북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저어새에게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는 큰 의미가 없다. 한반도의 저어새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남과 북의 협력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남과 북 사이에 평화 기운이 감돌 때면 항상 튀어나오는 이야기가 ‘한강하구 공동개발’이다. 제발 개발 좀 그만하고, 남과 북이 공동으로 한강하구 저어새 모니터링을 하면 좋겠다. 남과 북이 공동으로 DMZ 생태계 보전방안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면 정말 좋겠다. 인간 사이의 평화만큼 인간과 자연 사이의 평화도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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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DMZ는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북 각 2km의 구간을 이른다. 휴전선은 고성에서 출발해서 파주에서 끝나기 때문에 한강 하구부터 바다의 접경 구역은 엄밀한 의미에서 DMZ라 할 수 없지만 편의상 DMZ라 칭한다.

2) 북한에서는 저어새를 ‘검은낯저어새’라고 부르는데, 저어새가 많이 찾아오는 덕도 일대를 천연기념물 제37호(덕도바다새번식지)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3) 대만 2,785, 홍콩 센전 361, 중국 1,034, 일본 544, 마카오 40, 대한민국 24, 베트남 60, 필리핀 3

<생태지평 웹진 2020.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