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갯벌의 고고한 선비,

[새와 사람 사이] #7_강화갯벌의 고고한 선비, 두루미(Red-crow

두루미가 왔다. 매년 11월 초,중순이면 강화도를 찾는 두루미들인데 올해도 어김없이 왔다. 흔히 두루미 하면 철원을 떠올리지만, 강화도에도 40여 마리가 월동(우리나라에는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가 주로 월동하고 검은목두루미, 캐나다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들이 매우 드물게 섞인다. 강화도에는 주로 두루미가 월동하며, 흑두루미가 이동 중에 잠시 쉬어가는 경우가 있고, 1940년경에 쇠재두루미가 한 번 관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자로 ‘학(鶴)’이라고 하는 두루미는 뚜루루루~ 하고 목청껏 운다고 붙여진 이름(두루미의 학명인 Grus나 일본명인 츠루(つる)도 모두 두루미의 울음소리에서 연유했다.)이다. 러시아나 중국 등지의 습지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우리나라와 중국 남부에서 월동한다. 전 세계에 15종의 두루미가 있는데 그 중 11종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Red List)에 ‘야생에서 멸종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VU(Vulnerable: 취약) 등급 이상에 등재되어 있다. 
강화도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는 정수리가 붉다고 ‘단정학(丹頂鶴)’이라고도 한다. 전 세계 생존 개체 수가 3,400여 마리밖에 되지 않아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에 ‘위기(EN)’ 등급에 등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야생동물 제1급, 천연기념물 제202호로 지정되어 있고 인천광역시를 상징하는 새(인천시조)이기도 하다.

인천시조 두루미에는 돈과 권력이 복잡하게 얽힌 역사적 과정이 숨어있다. 1977년 문화재청은 인천 연희동, 경서동 일대의 갯벌 지역을 ‘두루미 월동권의 남한계를 이루는 대표적이고 유일한 월동지’라며 천연기념물 257호로 지정했다. 1981년 광역시로 승격된 인천시는 시를 상징하는 새로 두루미를 지정했다. 그런데 1984년, 문화재청은 돌연 천연기념물 257호의 지정을 해제한다. 1980년 겨울부터 두루미가 도래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매년 이곳 갯벌에 날아와 겨울을 나던 두루미들이 갑자기 오지 않은 이유는 무얼까. 인천시는 오지도 않는 두루미를 상징으로 지정했다는 말인가.

의문을 풀려면 1980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해 1월 14일, 동아건설은 연희동, 경서동 두루미도래지 일대의 공유수면(갯벌)을 간척할 수 있는 매립면허를 취득했다. 우리나라 공유수면법은 참으로 요상해서, 공공의 소유지이던 공유수면을 누군가 큰돈을 들여 매립하면 그의 소유가 된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대규모 개발에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 문화유적…, 이런 것들이 끼어들면 방해가 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는 없으나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을 해제했고, 동아건설은 이곳 갯벌을 모두 매립했다. 두루미가 먹이활동을 하던, 여의도 14개가 넘는 갯벌 1,300만 평이 4년 만에 사라졌다. 인천시 공식 기록물에는 인천시조 두루미가 (1980년이 아니라) 1984년부터 도래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당연한 일이다. 중장비가 굉음을 뿜어대고 수십 대의 덤프트럭들이 오가는 갯벌에서 여유롭게 거닐 수 있는 간 큰 두루미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인천시조 두루미는 역사에서 사라졌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인천 연희동, 경서동 인근 갯벌의 매립지도. 지도상의 검은 선이 매립 전의 해안선이다. 두루미 서식지를 메우고 들어선 동아매립지는 이후 수도권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수도권쓰레기매립장이 되었다.

이후 과거를 추억하는 매개로, 때론 환경 파괴를 걱정하는 신문기사에나 오르내리던 인천시조 두루미가 2018년 다시 등장한다. “과거 대규모 갯벌 매립으로 서식지에서 쫓겨났던 두루미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쫓겨났던 두루미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기사는 두루미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새로이 조성되고 있다는 듯 들린다. 이런 기사들은 대체로 ‘더 이상 두루미들을 쫓아내지 않도록 환경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끝맺는다. 훈훈한 기사인 건 분명하지만, 팩트는 왜곡되어 있다. 두루미들이 인천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월동지 중 한 곳이던 강화도가 1995년에 인천으로 편입되었을 뿐이다. 두루미가 돌아온 것은 환경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착시현상이다. 오히려 강화도 두루미들의 월동조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해안도로와 그 해안도로를 따라 줄지어 들어선 카페나 팬션들, 철과 때를 가리지 않고 두루미의 안방까지 난입하는 낚시꾼들 때문에 두루미들이 쉬거나 먹이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물이 들어 갯벌이 잠겼을 때 쉴 수 있는 공간도 농기계나 차량, 사람들로 방해받기는 매한가지다. 천연기념물 두루미가 들면 개발에 지장을 받을까봐 사냥꾼을 동원해 엽총을 쏘아대며 위협하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두루미 월동지인 철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주된 서식 공간이 민통선 안에 위치(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각종 개발과 방해로 계속 밀리고 밀려 민통선 구역 안으로 서식 구역이 좁혀진 것이다. )해 있어서 일상적인 방해나 위협은 강화도에 비해 조금 덜 한 것이 사실이지만, 민통선이라는 방어막이 언제까지 지켜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논이 사라진 자리에 비닐하우스와 인삼밭, 축사가 들어서고 있다. 포장도로가 늘고 전봇대와 전선도 늘어나고 있다. 남북 기류가 조금이라도 훈훈해지면, 철원에는 개발의 광풍이 분다.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구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경원선 철도 복원공사 구간은 두루미의 핵심 서식지를 관통한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4년 사이 24마리가 전깃줄과 철책에 부딪혀 죽거나 다쳤으며, 15마리가 농약이 묻은 볍씨를 먹고 죽었다.

철원시가 두루미생태관광을 하겠다며 한탄강변에 탐조대를 만들었다. 때 맞춰 먹이를 주기 때문에 많은 두루미들이 모이곤 한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것에 대해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혹독한 겨울철에 먹이를 공급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탐조대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고 두루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엄격하고 제한된 규칙 하에 야생의 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두루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방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루미 탐조대는 들어서자마자 눈을 의심케 한다. 탐조대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새들이 경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일 텐데, 상반신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이나 아무 거리낌 없이 창밖으로 불쑥불쑥 내밀어진 대포렌즈, 자랑과 소란으로 가득찬 방에는 ‘사진작가의 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연천에서 활동하는 한 생태세밀화가의 블로그에 이곳에 대한 묘사가 나와 있다. 

“야야, 붙어. 붙어! 그렇지! 싸워라, 싸워. 싸워, 싸워!… 서로들 원하는 장면이 나오라고 두루미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방문을 쾅쾅 닫는다. 방이 아수라장이다.…사진작가방에는 두루미는 없고 사진만 있는 것 같다. 겨울 손님 삶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남다른 장면을 잡아내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정말 자연을 담는 작가라면 이런 곳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 진짜! 싸움도 벌어지곤 한다는 이 아수라장에 생태관광이니 두루미 보호니 하는 개념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철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두루미 월동지이다. 두루미를 비롯해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 7,000여 마리 이상의 두루미류들이 월동한다. 철원의 두루미 탐조대 앞.

우리나라에는 약 1,400여 마리의 두루미들이 월동하는데, 그 중 80%가량이 철원에, 20%가량이 연천에 분포하고 강화도에는 약 40마리가 월동한다. 그런데 강화도 두루미는 다른 지역의 두루미 집단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보인다. 다른 지역의 두루미는 주로 들판에서 낙곡을 먹고 살지만, 강화도의 두루미는 갯벌에서 망둥어나 게, 갯지렁이 같은 갯벌생물을 먹는다. 한 마디로 해산물을 좋아하는 미식가다. 그저 입맛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철원지역과 유조비율도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혹시나 태생이 다른 건 아닐까 추측해 볼 수도 있다.

두루미는 이동 경로에 따라 2~3개의 집단으로 분류된다. 먼저 섬 집단. 일본 북해도에 텃새로 자리 잡아 장거리 이동을 하지 않는 1,500개체의 두루미가 그렇다. 이동 철새로 분류되는 두루미는 대륙 집단이다. 이는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러시아 한카 호나 중국 산장평원 등지에서 번식하고 북한의 금야평야, 안변평야를 거쳐 한반도에 도래하는 동부집단과 내륙 안쪽인 아무르강 유역의 러시아 힝간스키 보호구나 중국 자롱 보호구 등지에서 번식하고 중국 솽타이즈보호구, 황하 하구나 옌청 보호구에서 월동하는 서부집단이다. 중국 판진의 솽타이즈보호구는 나문재 같은 염생식물이 군락을 형성해 ‘홍해탄(붉은해변)’이라는 불리는 넓은 갯벌지역이고, 양쯔강 하구에 위치한 옌청보호구 역시 광활한 갯벌을 가지고 있어 중국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도 강화도의 두루미처럼 갯벌에서 서식하고 있다. 서식공간이나 식성, 이동경로의 근접성으로 볼 때 강화도 두루미는 오히려 서부집단에 더 가까워 보인다. 어쨌건 연구자들 또한 강화도 집단이 철원 집단과는 다른 부류일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돈이 없어’ 구체적인 연구·조사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한다.

두루미는 무척 큰 새다. 날개를 활짝 펼쳤을 때 길이가 230~250cm, 키는 120~150cm나 된다. 날개 편 길이로는 3미터에 이르는 독수리보다 작은 편이지만, 키만 놓고 보자면 날 수 있는 새 중에서 가장 큰 새다. 키만 큰 게 아니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코와 입부터 허파까지 연결되어 있는 기관도 무척 길어서 성조의 경우에는 거의 1.5미터에 이를 정도다. 가뜩이나 긴 목을 타고 내려오던 기관이 흉골 안에서 꼬불꼬불 꺾이며 접혀 폐와 연결된다. 이렇게 길고 독특한 기관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두루미의 고공비행과 연결 짓는다.

얼마 전, 흑산도에 그 자태를 드러내 버드워처들을 흥분시켰던 두루미가 있다. 쇠재두루미다. 두루미 중에서도 가장 작은 이 두루미는 이동 과정에 8,0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다. 영하 수 십도를 오르내리는 히말라야의 찬 공기가 바로 폐로 들어가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은 뻔한 일이다. 흉골 안에서 구불구불 돌아 폐로 들어가는 사이에 따뜻한 체온으로 공기를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 긴 두루미의 기관은 장거리 고공비행을 위한 치열한 진화의 산물인 것이다. 트럼펫처럼 긴 기관을 가진 탓에 목청도 커서 십 리 밖에서도 두루미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행히 철원, 연천 등지의 두루미의 개체수가 조금 늘었다(전 세계의 생존 개체수는 최근 증가하여 약 3,400여 개체로 판단되며, 일본 북해도에 약 1,500개체가 텃새로 정착해 서식하고 있으며 중국에 약 500마리, 국내에서는 약 1,400여 개체가 월동하고 있다. )고 한다. 강화도에서도 요 몇 년 사이에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보호활동과 같은 긍정적 요인도 작용했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표면의 눈 두께가 얇아져 먹이활동이 쉬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24시간의 지구 시계에서 마지막 1초에 해당하는 인간의 시간. 이 찰나의 시간이 지나온 모든 시간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우리가 진화의 오케스트라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다면,  그건 그 오케스트라를 들을 관객도 이미 없다는 것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두루미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 단순히 새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진화의 오케스트라에 속한 트럼펫 소리를 듣는 것이다. 두루미는 길들일 수 없는 우리의 과거와 유구한 세월의 상징이다.” Aldo Leopold <습지대의 애가>


<생태지평 웹진 2020. 11. 23>

세계적으로 15종의 두루미가 서식한다. 왼쪽부터 회색관두루미, 쇠재두루미, 흑두루미, 검은관두루미, 청두루미, 검은꼬리두루미, 캐나다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재두루미, 브롤가, 미국흰두루미, 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볼망태두루미, 큰두루미. 이중 11종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멸종위기종으로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