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람의 경계

자연과 사람의 경계, 버드워처(Bird Watcher)

‘버드워처’라고 들어보았는가? 새를 찾아 산으로 들로, 또는 개울이나 해안가를 쏘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에겐 조금 낯선 개념이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레저나 시민과학의 일환으로 탐조활동(Bird Watching, Birding)이 자리 잡아 왔다. 
강화도에도 자연을 누비며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민들의 모임이 있다. 강화탐조클럽(이하 ‘강탐클럽’)이다. 강화의 새를 찾아다니며 기록한지 올해로 9년째다. 풍요로운 갯벌과 섬답지 않게 넓은 논 습지, 산림이 잘 어우러진 강화도의 자연환경은 번식지, 먹이터 및 중간휴식지로서의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많은 새들이 깃들여 살아가고 있다. 순천(흑두루미), 금강하구(가창오리) 등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종을 대상으로 탐조관광을 활성화시키고 있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강화도는 사시사철 다양한 종류의 새를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탐조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버드워처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 자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정이다. 인구의 20%가량이 버드워처인 미국1) 만 하더라도 환경파괴와 살상에 대한 자성에서 현재의 탐조문화가 비롯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미국에는 사냥 열풍이 불었다. 한 해에만 수천만 마리의 새들이 ‘재미’로 학살당했고, 매년 500만 마리 이상의 새들이 여성들의 모자를 장식하기 위해 죽어갔다. 1914년에는 개체 수가 50억 마리 이상이던 여행비둘기가 멸종했다. 광기어린 사냥열풍 속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889년, 플로렌스 메리엄 베일리(Florence Merriam Bailey)라는 여성은 자신의 책 ‘오페라글라스를 통해 본 새’에서 산탄총이 아니라 오페라글라스의 렌즈를 통해서 새를 보라고 제안했다. 이러한 그녀의 접근은 현대 조류 관찰의 출발점이 되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새를 보호하기 위한 집회와 토론회를 열었고, 박제모자 생산업체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야생동물거래금지법(1900, the Lacey Act), 철새보호법(1918, the Federal Migratory Bird Treaty Act) 등이 제정되었고, 1905년에는 여성들의 주도 하에 국립오듀본협회가 창립되었다. 국립오듀본협회의 조류학자 프랭크 챔프턴은 ‘새를 죽이지 말고 발견한 새의 수를 집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미국 최대의 탐조대회인 ‘빅 이어(Big Year)’의 시작이다.

국립오듀본협회(National Audubon Society)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 최대의 환경보호단체. 뉴욕시와 워싱턴DC에 사무소가 있으며 24개의 주사무소, 500여 개의 지역챕터, 41개의 네이처센터를 두고 있다. 조류를 비롯한 야생동물 보호, 보존활동을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6,500만 명이 참여하는 시민모니터링 활동인 ‘크리스마스버스카운트(the Christmas Bird Count)’를 주관하고, 코넬조류학연구소와 함께 탐조모니터링 앱인 ‘이버드(eBird)’를 운영하고 있다. 이버드는 수백 개의 파트너 조직과 수천 명의 전문가, 수십만 명의 이용자가 참여하여 1억 건 이상의 조류관찰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버드워처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감각이 필요하다. 잘 보고, 잘 듣는 것이 좋은 버드워처의 기본이다. 잘 본다는 것은 물리적인 시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평균 시력이 3.0 이상인 몽골사람들처럼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이러한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 물리적인 시력보다 중요한 것은 시각적 감각이다. 다시 말해, 디테일한 세부를 잘 들여다보는 것보다 날아가는 모습, 날개나 꼬리의 길이 등의 형태나 동작, 각 부분별 비례나 특정한 동정 포인트를 찾아내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산에서는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부분 나무나 숲에 가려 새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땐 소리로 위치를 파악하고 찾아야 한다. 소리로 새를 구분한다고? 사실 일반인들도 몇 가지 정도의 새 소리는 구분한다. 꼬끼오~ 하고 우는 닭, 뻐꾹~ 대는 뻐꾸기, 짹짹 거리는 참새, 꺄아악~ 하는 까마귀……. 일상에서 잊고 있었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듣기 시작하면 훨씬 많은 새들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탐조는 바쁘고 삭막한 도시 생활에 찌들고 억눌린 우리의 감각을 살려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쌍안경은 왕성해진 우리 감각을 조금 더 확장시켜주는 보조도구에 불과하다. 자연과 교감하지 못하고, 감각이 죽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쌍안경을 갖더라도 제대로 새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버드워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끈기와 인내심이다. 새장이나 동물원에 갇힌 경우가 아닌 이상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한순간에 찾으려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새는 자연 속에 은밀하게 깃든 존재다. 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겠다. 사람의 필요라는 기준으로 새를 바라보는 경우에는 새를 잡거나 기른다. 이 경우 새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오로지 ‘고기’와 ‘깃털’ 기껏해야 ‘감상욕’만이 남는다. 자연은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에 불과하다. 새라는 필요를 얻기 위해 자연은 파괴되거나 아예 자연에서 빼내와 사람의 앞마당에서 사육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게 된다.
새라는 존재 자체에 주목하는 경우에는 그 새가 깃들인 공간으로서 자연을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게는 동물원에 있는 두루미와 강화갯벌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두루미가 주는 감동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삶의 터전을 거세당한 새는 존재의 조건을 상실한 디아스포라일 수밖에 없다. 버드워처들은 새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 전체를 소중히 여기며, 그런 점에서 필연적으로 자연보호론자가 될 수밖에 없다.

버드워처들의 경기가 있다. 함께 모여, 또는 특정한 기간을 정해 누가 많은 새를 찾아내고 관찰하는가를 겨루는 대회이다. 탐조 문화의 선진국인 영국은 물론 미국2), 대만, 홍콩 등 많은 나라에서 고유한 형식의 탐조대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물론 있다. 외국처럼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고 아직까지 틀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서산, 태안, 금강하구 등의 지역에서 다양한 형식의 탐조대회가 열리고 있다. 
강화도에서는 지난 2016년부터 빅버드레이스(Big Bird Race, 이하 BBR)가 열리고 있다. 외국의 대회들이 대체적으로 눈과 귀로 관찰하고 야장을 기록하는 형식인 반면, 강화BBR은 24시간 동안 기록한 야장과 함께 사진을 제출해야 한다. 매년 30여 팀이 120여 종의 새를 기록한다. 2019년에는 강화에서 관찰기록이 없었던 뒷부리장다리물떼새가 관찰되기도 했다.
강화BBR은 새를 관찰하며 자연과 교감하는 자연탐사 프로그램으로, 의미와 재미를 함께 잡는 대중적 시민과학활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강화의 버드워처들은 오늘도 열심히 새를 본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앞으로 무궁토록 새들이 강화도를 찾을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본다.)

Birds through an Opera-glass(1889, Florence Merriam Bailey)
“새를 보러갈 때, 덤불이 우거진 시냇가 제방이나 오래된 향나무가 있는 목초지처럼 새를 보기에 좋은 곳으로 가라. 그리고 덤불 속에 앉거나 태양을 등지고 나무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새를 보거나 그 소리를 음미하라.”
“오페라글라스로 무장하고 나가는 학생은 총으로 무장한 학생보다 우리의 지식을 더해 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열정을 축적하고 지속적으로 즐거운 기억을 저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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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16세 이상 6,900만 명의 미국인이 지난 1년 간 새를 관찰하거나 사진을 찍는 활동에 참여했다. 이는 낚시나 등산 인구보다 많은 것이다. 그 중 28%가 연간 50일 이상 탐조활동에 참여한다.(Economic Potential of Birding / National Survey on Recreation and the Environment(NSRE). 2002)

2)  미국에는 ‘빅 이어(Big Year)’라고 하는 탐조대회가 있다. 이름 그대로 매년 1월1일 00시부터 12월31일 23시 59분 59초까지 진행하는 대회로 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새를 본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대략 1년간 800여 종의 새를 관찰해야만 상위권에 도전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생태지평 웹진 2020. 3. 23>